[한국다중뉴스 = 최경필 작가]
정청래와 박찬대는 비슷해보여도 차이가 많은 많은 인물이다. 정청래는 충남 금산 출신이고, 박찬대는 원적이 경북 안동으로 고향은 인천이다. 둘다 기독교인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정치적 성장의 차이점을 보면 정청래는 2003년 열린우리당 창당과 함께 정치에 뛰어들어서 17대 때 처음 국회에 입성했다가 18대 때는 낙선했고, 20대 때는 김종인에 의해 경선 탈락되고 손혜원이 대신 공천을 받는 아픔을 겪었다. 그렇게 4선이 되었다.
그 이유는 정제되지 않은 공격적인 발언 때문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때 최고위원을 하면서 주승용, 박주선 등 비노계 정치인을 공격했다. 그렇게 치고박고 하면서 적도 많이 늘어났다.
반면에 박찬대는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한 후 입당해 20대 때 인천에서 22대까지 계속 실패를 모르고 당선되었다. 거친 언사도 없었고, 당내에서도 논란을 만든 적도 없다. 그러다가 이재명의 호위무사로 등장하면서 원내대표까지 승승장구했다.
정청래는 건국대 운동권 출신이다. 89년 미대사관저 사건으로 2년을 살았고 이후 집시법 위반으로도 또 2년을 살았다. 노사모 때는 명계남과 인터넷정당을 만들기도 했고, 친노조직인 국민참여연대 대변인도 했다.
정청래는 4년의 감옥살이, 노사모 활동, 이재명과 함께 정동영 휘하의 정통사를 함께 하는 등 험난한 길을 살아온 정치인이다. 반면에 박찬대는 회계사로 오랫동안 전문분야에서 일하다가 20대 때 정치에 뛰어들었다. 자수성가형이다. 대학 때 운동권이었다고 하지만, 행동하는 운동가는 아니었다.
두사람의 극명한 차이는 감옥살이와 실패를 맛본 정치인과 성공가도를 달려온 정치인이라는 점이다.
최근 정치가 팬덤 정치로 변질(?)되었다고는 하지만, 22대 국회에서 법사위원장을 맡은 정청래의 사이다 발언으로 그의 팬층은 더욱 두터워졌다. 율사 출신이 아닌 정청래에게 법사위원장은 의외였으나, 너무도 훌륭하게 잘 처리했다는 호평을 받았다.
난 정청래와 열린우리당 창당동기이기도 하지만, 17대 국회에 잠시 있으면서 만난 적은 있다. 당당한 초선이었지만, 너무 틘다는 느낌, 불안한 느낌도 있었다. 그러나 시대가 정청래를 불렀고 당대표까지 올랐다.
많은 국회의원들이 박찬대를 지지했으나, 권리당원들은 정청래를 지지했다. 호남에서 정청래 66.49% ,박찬대 33.51%였다. 이미 앞선 영남권 충청권 발표에서 대세는 굳어 있었다. 뒤집어질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막판에 지저분한 공격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국민들은 이재명 처럼 고난을 겪고 성장한 정치인을 선호한다. 고통을 겪어 보지 않은 정치인은 성공하지 못했다. 김대중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모두 고난을 딛고 당선되어 국민의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이재명은 말할 것도 없다.
반면에 그렇게 고난을 겪어 보지 못한 문재인은 결국 윤석열이라는 괴물을 탄생시키고 말았다. 박찬대가 가져보지 못한 정청래의 고난과 부침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난이란 국민을 위해 받을 때 정치인은 성장하고 지지를 받는 것이다.
그러기에 박찬대를 지지해 아쉬움이 많은 분들은 그 점을 잠시 잊고 살지 않았는지, 당신의 고난을 대신해 동참할 수 있는 정치인은 누구였는지 고민해보시기 바란다.
또한 박찬대가 이번 아픔을 겪고 더 국민의 고통에 동참해주길 기대한다. 아픈 만큼 성장할 수 있으니까. 나는 정청래와 박찬대의 쓰임새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둘다 훌륭한 인물이기 때문이다.